1959년 부산 강서구 명지동 낙동강 나룻배_1, 저작권자 : 한국저작권위원회, 출처 : 2018년공유저작물DB수집

1959년 부산 강서구 명지동 낙동강 나룻배_1, 저작권자 : 한국저작권위원회, 출처 : 2018년공유저작물DB수집

소금과 나루(4분 41초)_1024.mp3

☝️위 버튼을 누르시면 구술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안동까지 올라갔던 광선(廣船), 소금배

무거운 소금가마들은 어떻게 다른 지역까지 갈 수 있었을까요? 바로 낙동강으로 ‘나룻배’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소금배에는 갈대로 만든 갈대발, 갈대 빗자루도 싣고, 게젓, 재첩 등 부산물로 나는 해산물들을 싣고 올라갔습니다. 소금배는 힘겹게 낙동강을 거슬러 다녀오는데요. 보통 하구에서 물건들을 싣고 구포를 거쳐 안동까지 올라갔다고 하는데요. 배가 돌아올 땐 참외, 수박과 같은 과일이나 쌀, 곡물등과 물물교환하여 가득 싣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소금 가마니들과 함께 부산품을 싣고 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소금배가 ‘광선(廣- 넓을 광, 船 - 배 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장 김창명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소금배는 길이는 70자(20m), 폭은 30자(10m) 정도로 배가 아주 컸다고 합니다. 배가 크기 때문에 잠도 잘 수 있었고, 밥도 해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흰 돛을 단 것이 세 개쯤 달려있고, 양쪽에 줄을 매 배를 끄는데요. 이를 ‘고딧줄’이라 합니다. 강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기에, 바람이 없으면 배를 띄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삿대를 짚고 나가기엔 더욱 힘이 드니, 고딧줄을 끌어 배를 띄우는 겁니다. 고딧줄로 뱃길을 만드는 것이죠. 이 고딧줄은 칡덩쿨로 만들어져 단단하고 두껍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배가 컸기 때문에 배를 끄는데 아주 큰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딧꾼들이 힘겨움을 잊기 위해 고딧줄 끄는 소리를 일 노래로 불렀습니다. 배를 물길에 띄운 게 다가 아닙니다. 낙동강의 폭이 좁고 수심이 얕기 때문에 땅 밑을 짚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노를 단순히 저어 올라가기 보다 삿대를 짚으며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낙동강의 소금배는 부산에서 출발해 안동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이 여정에는 다양한 어려움과 힘겨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구술자들로 하여금 커다란 배 위에 소금 가마니를 싣고, 고단함을 잊기 위해 고딧줄 노래를 불렀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부산을 가기 위해 타야만 했던 나룻배

염전 폐업 후 소금을 싣는 배들은 사라졌지만, 교통의 한 부분으로써 나룻배는 80년대 초반까지 다녔습니다. 특히나 명지와 신호동에선 부산(원도심)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방법이 하나의 교통수단이었습니다. 현재는 나룻배가 아닌 자동차로 낙동강에 만들어진 다리 위를 건너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부산을 오다녔던 그 시절의 기억들과 경험들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갈라 카면, 여기서 진해에서 다니는 제일여객이 있었는데 그거 타고 이제 구포다리로 건너가지고 충무동까지 갔지. 배를 타고 가도 돼. 배를 타면 이제 ‘신포(현재 명지 새동네쪽)’라고 하는 여기서 건너 저 하단선을 타고 넘어가면 돼. 거기서 배를 타고 저 일웅도(을숙도 윗 머리)를 거쳐서 그리 돌아가지고. 옛날에 동산유지가 있었는데 거기 하단에 가면, 지금 가락타운 아파트. 거 내려가지고 이제 거서 이제 버스 타고 충무동도 가고 자갈치까지 갔지. 근데 (다리)개발이 돼가 없어졌어. (김영모, 2023년 7월 구술채록 중에서)

그때는 인자 충무동에서 버스를 타고 하단까지 가면 이제 배 타고 뭐 통통통통하는 이런 배 타고 이제 을숙도로 막 이래 갈대밭 안 있습니까? 대밭에 그 하단에 많거든예. 지금은 공원이 되었지만. 그래가 배 타고 이제 물이 또 그거는 또 썰물 때는 바로 못 가고 이래 구포다리까지 올라가가 이래 둘러가고 옛날에는 그랬어예. 그래가 명지 나루터에서 내리면, (신호로 들어가려고)한 십 리 길로 걸어가요. 그 전신 논 있는데 인제 이래 걸어가면 신호 들어가는 나루터가 있거든예. 그러면 그 배 타고 들어가예. 그런데 거가 지금은 신호대교가 들어서가지고 우리 신호하고 명지하고 바로 신호대교가 돼가지고 버스가 바로 그리 가거든예. 물이 많으면 둑에서 바로 동네까지 들어가는데 썰물 때는 바로 몬 들어가고 이래 거지(옷가지를 걷어) 가지고 이래가. 그 뱃길이 안 있습니까? 그까지 걸어가야예. (임영숙, 2023년 7월 구술채록 중에서)

<aside> <img src="/icons/microphone_blue.svg" alt="/icons/microphone_blue.svg" width="40px" /> 구술 참여자 주경업 (향토사학자, 1941년생, 2023년 5월 24일 채록) 김창명 (조선장, 1938년생, 2023년 6월 28일 채록) 박상기 (향토사학자, 1939년생, 2023년 6월 6일 채록) 김영모 (명지 농부, 1951년생, 2023년 6월 15일 채록) 임영숙 (옛 신호동 주민, 1940년생, 2023년 7월 04일 채록)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