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 어민들은 70년대부터 지금까지 1사장(동측해안지구) 일대에서 파래양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몰운대와 화손대 사이에서 파래양식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절기인 10월부터 4월까지만 양식업을 하고 그 외 시기에는 철망을 거둡니다. 파래가 한창일 때는 다대포 1사장 바다 앞, 낫개 해수욕장, 쥐섬 근처, 다대포 해수욕장 앞, 솔섬 뒤 두송반도 부근까지 꽤 곳곳에서 양식업을 했었다고 합니다. 120가구 정도가 파래양식업에 종사하였고, 현재는 11가구가 종사하고 있어 양식업의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aside> 🗨️ "예전에는 제가 한 열다섯 살(1970년대) 이럴 때부터 파래를 한 걸로 아는데. 그 파래는 어디서 건너 왔나면, 전라도 사람들이 부산이나 가덕도로 오면서 여기가 (파래 양식하기에)적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처음에는 한 100집이 넘었어요. 120집 정도? 120집 가구가 파래를 했는데요. 다 수작업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분들(종사자들)이 하시다가 다 돌아가시기도 했고. 지금은 11집 남았어요.” - 강경순, 다대포 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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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부감 사진을 보더라도, 당시의 파래양식장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2001년 12월 2일 촬영)
파래 양식장은 현재 많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다대 파래는 ‘명품 다대 파래’로 불리며, 비쌀 때는 1년 양식하여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 지역민은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7-80년대 당시에는 근처 목재산업 사무직의 월급이 6만 원~8만 원이었던 것에 비해, 파래 수확 작업 노동의 일급은 6천 원이었으니 호황기 시절 파래가 상당히 돈이 되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side> 🗨️ “이 파래가 엄청 비쌌거든? 비싸가지고 그때는 많이 벌었어요. 1년 해갖고 집 샀죠. 옛날엔 파래하러 배 타고 나가고, 1년 파래 잘하는 사람들은 2천만 원 이렇게 버는데, 집을 한 개 사. 옛날(7,80년대)에는 파래하러 가는 사람들이 파래하러 가면 6천 원이었나 그랬거든. (중략) 아침 7시에 가면 12시까지 일해. 하루종일 할 때도 있고. 그 때는 그 돈이 많았다. 큰 거야. 00목재 사무직 월급이 그 때 6만 원이었나? 6만 원, 8만 원 밖에 안됐는데….” - 강경순, 다대포 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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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파래가 명품파래로 불리며 고가에 팔릴 수 있었던 것은, 파래 채취를 하는 과정이 그 비법 중 하나다. 채취시 모두 수작업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파래양식은 어민들에게는 큰 수확의 기쁨을 주는 동시에 그만큼 고강도의 노동으로, 현재 생산량이 줄어가고 있는 원인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aside> 🗨️ ”수작업으로 하는데 다 손으로 뜯거든요. 전부 다 고령인데 손으로 다(하죠).” - 강경순, 다대포 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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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지금 연세가 많아 그만두신 분들이 많아요. 제 초창기(2000년 초)에는 그래도 생산자들이 제법 있었거든요. 경매를 봐도 제법 오래 걸리고 그랬는데. 그분들(생산자) 중에는 돌아가신 분도 있고, 연세가 많아 그만 두신 분도 있어요. 자식들이 물려 받지 않아서 그만두신 분도 있고요. 또 자녀분들이 이어서 받아와서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얼마 안 돼요. 생산(양식업) 일이 너무 (고)되니까. 자녀분들을 하라고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일이 수월하면서 돈이 되면 그 일을 이어받고 할 건데. 이게 새벽에 그 추울 때 나가서 뜯고 하는 거 이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 박혜영, 파래 중매 작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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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파래에 필요한 양식업 도구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파래 생산을 하기 위해선 파래 씨앗이 붙을 ‘줄망’이 필요합니다. 파래는 아주 기다란 줄망에 붙어 자랍니다. 아래 내용은 파래양식업에 필요한 줄망을 이용한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를 구술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대나무를 (양 옆으로)해갖고 앉아서 (줄망 작업을)하고. (대나무 줄망의)가로 길이는 45m 되거든. (세로로) 이게 1m 40(cm), (가로로) 45m.
(밧줄) 4개를 (대나무에 엮어서) 뭉쳤잖아요. 이렇게 (줄망을 바다에) 펼치는 거라.
옛날에는 김망처럼 다이아몬드 망이었는데. 지금은 줄망이거든.
그러니까(줄망을) 양쪽에 앉아서 둘이서 이렇게 줄을 갖고 (당겨요).
이게(파래 양식장에도) 자기 자리가 있어요. (줄을) 해놨으면 이제(줄 위에) 파래만 걸쳐져 갖고 있다고 봐야지.
대나무로(고정)해야 파래가 더 무거워도 안 가라앉는다이가. (대나무가) 그걸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 밑에 닻을(달아). 우리는 10간짜리, 40kg 이런거(닻)를 꼭지점, 이 모서리에 3가락씩 넣어주거든. 왜냐면 물이 세니까. 기둥 역할이지.
중간 허리라 해서 5간짜리(20kg)를 중간, 중간에 넣어. 그래가지고 파래가 (줄망에) 이제 붙는다이가.
씨앗은 종자 붙여오는 데가 또 따로 있어요. 어디 가서 붙여오냐 하면, 신항만 쪽 있지예? 가덕도에서 종자를 붙여 와요.
이거 그대로 (파래 종자)를 1개씩 1개씩 떼 갖고. 1개 있던 게 4개가 되는 거지.
그래갖고 한 15일에서 20일 정도면 (파래가) 자라.
이제 파래가 조금씩 송글송글 나오면, 새살처럼 올라오면, 파릇파릇해지는데 이걸 이제 다 따지.
자라면은 이제 파래를 뜯어요. (줄망을 잡으면서) 이래가지고 파래를 뜯는데. 이렇게 올려가지고 뜯는 거지.
(줄망을 잡으며) 이렇게 탁 잡고, 여기서 파래를 뜯는다. 줄망을 이제 자꾸 이렇게 뜯는다이가.
그래가 (다 뜯은 줄망을 다시)갖다 놓는거지.
대나무를 (양 옆으로) 늘어뜨려 앉아서 (줄망 작업을)하고. (대나무 줄망의)가로 길이는 45m 되거든. (세로로) 이게 1m 40(cm), (가로로) 45m.
(밧줄) 4개를 (대나무에 엮어서) 뭉쳤잖아요. 이렇게 (줄망을 바다에) 펼치는 거야.
옛날엔 김망처럼 다이아몬드 망이었는데. 지금은 (긴) 줄망이거든.
그러니까(줄망을) 양쪽에 앉아서 둘이서 이렇게 줄을 갖고 (당겨요).
이게(파래 양식장에도) 자기 자리가 있어요. (줄을) 해놨으면 이제(줄 위에) 파래만 걸쳐져 있다고 봐야지.
대나무로(고정)해야 파래가 더 무거워도 안 가라앉아. (대나무가) 그걸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하거든.
그 밑에 닻을(달아). 우리는 10간짜리(40kg) 이런거(닻)를 꼭지점, 이 모서리에 3가락씩 넣어줘. 왜냐한면 물살이 세니까. (대나무가)기둥 역할을 하는 거지.
중간 허리라 해서 5간짜리(20kg)를 중간, 중간에 (하나씩) 넣어. 그래서 파래가 (줄망에) 붙어.
씨앗은 종자 붙여오는 데가 또 따로 있어요. 어디 가서 붙여오냐 하면, 신항만 쪽 있죠? 가덕도에서 종자를 붙여와요.
이거 그대로 (파래 종자)를 1개씩 1개씩 떼서. 1개 있던 게 4개가 되는 거지.
그래서 한 15일에서 20일 정도면 (파래가) 자라.
이제 파래가 조금씩 송글송글 나오면, 새살처럼 올라오면, 파릇파릇해지는데 이걸 이제 다 따지.
자라면 이제 파래를 뜯어요. (줄망을 잡으면서) 이렇게 파래를 뜯는데. 이렇게 올려서 뜯는 거지.
(줄망을 잡으며)이렇게 탁 잡고, 여기서 파래를 뜯어. 줄망을 이제 계속해서 이렇게 뜯어.
그래서 (다 뜯은 줄망을 다시) 가져다 놓지.
위 구술 내용을 정리하자면 파래 양식을 하는데 세로로는 1.4m, 가로로는 44~45m정도의 길이의 기다란 줄망이 필요합니다. 이 긴 줄망에 파래 종자가 붙어 자랍니다. 이렇게 긴 줄망을 만들기 위해선 중간, 중간 대나무를 끼워 줄을 엮어야 합니다. 이렇게 만든 줄망을 바다에 고정하기 위해 10간(40kg)짜리 철근 닻을 모서리에 끼우고, 중간허리에도 5간(20kg)짜리 철근을 달아서 기둥의 역할을 하도록 합니다. 그 다음 바다에 줄망을 튼튼하게 고정시켜 펼쳤다면, 줄망 아래로 파래 종자가 붙어 자랍니다. 보통 파래가 자라기까지는 15~20일 걸린다. 파래가 자라면, 어민들은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나가 줄망을 거둬 올리는데, 모두 손으로 뜯습니다. 파래를 다 뜯고 난 후에는 줄망만이 남습니다. 이걸 다시 말려 널어 뜨려 줄망을 길게 엮어 다시 양식업에 사용합니다. 앞서 서술했듯이 동절기에만 파래를 생산하기 때문에, 파래 양식 도구들은 동절기에 가면 방파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직접 촬영, 줄망작업을 하는 모습 (2022년 4월 22일 촬영)